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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여행 조선 정원의 대표 소쇄원과 가사문학의 산실 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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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엄짱 작성일15-08-26 19:11 조회1,7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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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여행 조선 정원의 대표 소쇄원과 가사문학의 산실 식영정

조선 정원의 대표 소쇄원의 여름을 보기 위해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를 찾았다. 담양 소쇄원은 조선 중종 25년, 1530년 조광조의 제자 소쇄처사 양산보(1503∼1557)가 지은 원림이다. 이곳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광풍각과 제월당을 지어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조선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소쇄원의 여름을 반기는 것은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대숲과 바람조차 빛이 되는 광풍각과 제월당이다. 소쇄원은 지난 1983년 7월 20일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5월 2일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이곳은 광풍각과 제월당, 오곡문, 애양단, 고암정사 등 10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고, 광풍각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이다. 또한 광풍각에는 영조 31년, 1755년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그려진 송시열의 그림이 남아 있다.

소쇄처사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자 이에 충격을 받고 벼슬길을 등지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소쇄원을 지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을 남겼는데, 남에게 팔지 말며,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했다.

그의 뜻대로 지금껏 잘 보존되어온 것은 다행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엽의 정원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양산보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10여 년에 걸쳐 소쇄원을 만들었다. 이곳에 머물며 자연을 감상하고 사람 만나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든 사람은 송순, 정철, 송시열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들로 가사 문학의 대가들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대숲이 시원하게 우거져 있으며, 소쇄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작은 천에는 청둥오리가 화려한 몸짓을 한다. 작은 천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광풍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계곡 옆 정자인 광풍각은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맡에서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 이름 붙은 곳으로 소쇄원 48영 중에서 제2영이다. 소쇄원 48영은 양산보의 사돈인 김인후가 1548년 당시 소쇄원을 보고 쓴 48수의 시제가 목판에 새겨져 있다.

소쇄원 가장 높은 곳에 있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제월당은 비 갠 뒤 하늘의 맑은 달을 뜻한다. 소쇄처사 양산보가 거처하며 조용히 책을 읽던 곳이 제월당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궁원과 향원, 민간 원림으로 나눈다. 정원의 성격에 따라 별서 원림, 산수 원림 등으로 분류한다. 창덕궁의 후원이 대표적인 궁원이라면 남원 광한루는 지방관리들이 조성한 대표적인 향원이다. 별서 원림은 선비가 낙향을 하여 꾸민 정원을 의미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별서 원림은 양산보의 소쇄원과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이다. 별서 원림은 누나 정을 두어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즐기던 선비들의 풍류적 자연관이 담겨 있다. 산수정원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하여 만든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를 생각하면 된다.

조선의 별서 원림 중에서 최고인 소쇄원은 지은지 485년이 흐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정원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수양과 학문뿐 아니라 풍류와 사귐을 통한 선비문화에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한 장소로 정자나 누각을 지어 교류하는 일은 선비문화의 정신을 표출한 산물이다.

양산보의 소쇄원을 둘러보고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의 보고인 식영정과 성산사로 발길을 옮긴다. 송강 정철은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이자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식영정 일대는 정철이 은거 생활을 하던 곳이다. 정철의 유명한 작품인 성산별곡'이 식영정에서 나왔으며 인근 송강정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나왔다.

정철이 머물던 곳을 보며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을 좀 더 살펴본다. 식영정은 그림자도 쉬어가는 곳이란 아름다운 정자이다. 식영정은 석천 임억령의 정자이다. 조선 명종 15년,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을 위해지었다. 식영정 경내에는 석천을 주향으로 배향하는 성산사가 있다. 석천 임억령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다.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의 제자들이 차운하였으며, 이들 네 명을 '식영정 사선'이라 부른다. 이런 이유로 식영정을 사선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철은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을 비롯한 많은 시가를 지어 송강 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식영정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팔작집은 건물의 네 귀퉁이에 모두 추녀를 달아 만든 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식영정에서 내려와 부용당을 마주한다. 부용당에서는 판소리가 들린다. 부용당에서 듣는 판소리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청량함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부용당 옆에는 서하당이 있다. 서하당은 김성원(1525-1597)의 호이다. '서하당 유고'에 서하당과 식영정이 함께 명종 15년, 1560년에 함께 지어졌다고 전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명종 13년, 1558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으로 각지의 의병들과 제휴하여 현민들을 보호하였다. 이때 어머니와 함께 성모산성에 피신하였다. 왜병을 만나자, 몸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다가 함께 살해되었다. 그의 사후 그 산을 어머니를 보호한 산이라 하여 모호산이라 하였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 등 성산 일대의 화려한 자연경관을 벗 삼았다.

송강 정철은 이곳에서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 귀봉 송익필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광주호가 생기면서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 조대, 서석대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러 곳 있었다고 전하나 모두 물속에 잠겨버렸다.

선비들의 교류이자 문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원의 정원인 소쇄원과 가사문학의 보고인 식영정 일대를 보며 당시의 정경들을 눈을 감고 그려본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선 정치사의 굴곡에서 위로가 되었던 조선 정원과 정자의 문화는 한마디로 사람과 자연의 순응이다. 그 속에서 조선 가사문학의 정서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자연과 사람과의 조화가 참으로 뛰어난 이곳이 시원이다.

One Point Tip
전남 담양 소쇄원 찾아가는 길 주소: 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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